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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육아 기준

"남편은 육아를 도와주는 사람이다."나는 이 문장을 정말 싫어한다. 도와준다는 말에는 '원래 내 일'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나는 엄마가 되기 전, 12시간 나이트 근무를 했고, 임신 막달까지 병원에서 일했고, 출산 전날까지 근무했다.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지금 육아가 그때보다 더 힘들다. 직장에서는 화장실도 갈 수 있고, 점심시간도 있다. 단 1분이라도 쉴수있다.엄마는 아기가 울면 밥을 먹다가도 숟가락을 내려놓는다. 아기를 업고 화장실에 간다.간호사는 야간 근무가 끝나면 집에 간다. 엄마는 밤에도 몇 번씩 깬다. 나는 육아를 직장보다 쉬운 일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하지만 내가 이 이야기를 백 번 한다고 해서 의미가 있는 건 아니다. 중요한 건 제이콥이 이걸 이해한다는 것이다!나는 자주 이..

Diary/미국life 2026.08.08

임신 36주, 아직 4주가 남아 있다고 생각했다.

36주차, 아직 출산가방도 완벽하게 싸지 못했고, 아기방도 마무리할 것이 남아 있었다.만삭 사진도 더 찍고 싶었고, 무엇보다 제이콥과 둘만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아기가 태어나기 전, 우리는 마지막 한 달을 조금 더 여유롭게 보내게 될 줄 알았다.하지만 모든 계획이 바뀌었다. 그날 나는 일하는 내내 진통을 느꼈다. 처음에는 배에 가스가 찼다고 생각했다. 배가 점점 심하게 아파서 응급실에 향하면서도, 속으로는 검사만 받고 집으로 돌아올 줄 알았다. 다음날 출근 할 생각이였다. 그런데 나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응급실에서 바로 분만실로 올라갔고, 몇 시간 뒤 아들은 내 품에 안겨 있었다.아기를 처음 품에 안았을 때의 감정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행복했다. 인생에서 느껴본 적 없는 기쁨이었다.건강하..

에필로그 - 나는 왜 돌아가지 않는가

나는 한국을 떠난 것이 아니라 한 구조를 떠났다. 그 구조 안에서는 참고, 기다리고, 설명하고, 증명해야만 살 수 있었다. 나는 더 이상 나의 고통을 정당화하지 않고 살고 싶다. 왜 힘든지, 왜 떠나는지, 왜 이것이 잘못됐는지를 계속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원한다. 그래서 나는 돌아가지 않는다. 도망쳐서가 아니라, 이제 나로 살아도 되는 곳에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라는 틀의 바깥에서 - 7장 내가 다시 만든 삶

제이콥을 만났을 때 나는 이미 누군가에게 나를 맡기는 법을 잃어버린 사람이었다. 사실은 맡기고 싶지 않았다. 이미 한 번 사람에게 내 미래를 맡겼다가 삶이 어떻게 망가지는지 배웠기 때문이다. 나는 통제를 잃는 것에 대해 트라우마적인 공포를 가지게 되었다. 누군가가 나의 미래를 쥐고 있었던 기억이 내 몸에 남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사랑 앞에서도 먼저 나를 내려놓지 않았다. 그건 차가움이 아니라 생존이었다. 그대신 나는 내 삶을 들고 제이콥 옆에 섰다. 그리고 그는 그 자리를 침범하지 않았다. 제이콥은 무의식중에라도 나를 통제하지 않으려 조심한다.그는 내가 어떤 트라우마를 겪었는지 모르면서도 그렇게 행동한다. 내가 요구해서가 아니라 그는 원래 그런사람 이다. 그는 내 선택에 먼저 손대지 않고, 내 결정에..

한국이라는 틀의 바깥에서 - 6장 괌 이후, 미국 본토

차 사고 이후 내가 괌에서 쌓아 온 안정감이 흔들리기 시작하자, 직장에서의 일도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스트레스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긴 휴가를 받았다. 쉬기 위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해서였다. 나는 괌을 떠날 방법을 현실적으로 계산하기 시작했다. 먼저 영어 시험 점수가 필요했다. 괌으로 올 때도 영어 점수가 안나와서 한국에 1년이나 발이 묶였던 기억이 있었다. 그 악몽을 다시 반복해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지치게 했다. 하지만 미국 본토 간호사 면허로 바꾸려면 피할 수 없는 절차였다. 다른 방법은 없었다. 그보다 더 무서운 건 다시 취업하는 일이었다.미국 본토에서,간호사로,혼자. 괌보다 훨씬 크고, 빠르고, 냉정한 곳에서 내가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그 질문이 매일 나를 흔들었다. 동시에 ..

한국이라는 틀의 바깥에서 - 5장 괌에서 무너지기 시작하다

괌에서의 삶은 안정되어 있었다.일이 있었고, 집이 있었고, 나는 혼자서도 하루를 탄탄하게 굴려가고 있었다. 하지만 관계가 없었다. 한국에서는 관계가 너무 많아 숨이 막혔지만, 여기서는 아무도 없었다. 퇴근 후에 문을 닫고 들어가면 그 공간에 있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었다. 누군가와 갈등할 일은 없었지만, 누군가에게 기대는 일도 없었다. 자유는 혼자가 되는 것이었고, 혼자는 곧 고립이 되었다. 나는 그 고립이 처음에는 평화처럼 느껴졌지만, 시간이 지나자 소음 없는 방처럼 나를 잠식했다. 하루 종일 영어로 일하고, 집에 와서는 말 한마디 하지 않는 날들이 이어졌다. 나는 조금씩 내 목소리를 잃어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혼자인 게 편하다고 생각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아도 되고, 누구의 기분도 관리하지 않아도..

한국이라는 틀의 바깥에서 - 4장 괌 이민

낯선 나라, 괌에서의 나는 외로웠지만 분명히 희망을 느끼고 있었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가끔은 정말 죽을 것처럼 힘들었다. 서류도, 집도, 일도, 모든 걸 혼자 처리해야 했다.그런데도 나는 이상하게 행복했다. 자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괌은 아름다웠다.그냥 예쁜 정도가 아니라 숨이 멎을 만큼, 가슴이 찢어질 만큼 아름다웠다. 햇빛이 바다에 부딪힐 때마다 세상이 새로 태어나는 것 같았고, 그 풍경 앞에 서 있으면 내가 여기까지 스스로 왔다는 사실이 벅차오르듯 밀려왔다. 그 아름다움은 위로가 아니라 각성이었다. ‘아직 살아도 되겠다’는 감각.‘여기서 다시 시작할 수 있겠다’는 확신. 괌의 하늘과 바다는 내가 잃어버렸던 미래의 크기를 다시 보여주고 있었다. 바다는 늘 가까웠고, 하늘은 넓었고, 나는 스..

나는 왜 한국의 시스템을 떠났는가 - 3장 나의 미래를 통제한 사람

Frank가 보여준 것은 미래가 아니라 소품들이었다. 영주권 카드미국 여권시민권 증명서미국 집 문서미국 차 키은행 통장 그 모든 것은 “내가 이미 미국에 속해 있다”는 연출이었다. 나는 그가 가진 것이 아니라 그가 만들어낸 무대를 믿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이민이라는 세계를 잘 몰랐고, 그래서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수 없었다. 그는 그 무지를 정확히 이용했다. 그의 거짓은 사랑이 아니라 소유를 목적으로 했다. 이혼 소송이 시작되었을 때, 그는 거짓을 무기로 바꿨다.그 때 나는 이미 혼자 힘으로 미국 영주권 절차를 밟고 있었다.그러자 그는 나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대사관에 아는 사람이 있다.”“미국 판사를 안다.”“내가 마음먹으면 네 미국행은 끝이다.” 그는 돈과 인맥으로 이민국을 조작할 수 있는 ..

나는 왜 한국의 시스템을 떠났는가 - 2장 결혼이 끝나자 내가 보였다.

신규 간호사로 일하던 시절, 나는 자주 울었다.환자 때문이 아니라 관계와 분위기, 그리고 끝없는 긴장 때문이었다. 그럴 때마다 연차 높은 선생님들이나 수간호사를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나도 저 자리까지 가면 조금은 편해지겠지.’ 그게 나를 버티게 하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간호부 회의가 끝난 뒤 돌아온 수간호사가 사무실에서 펑펑 우는 모습을 봤다. 우연히, 단 한번이 아니라 병원을 옮길 때마다 나는 비슷한 장면을 다시 보게 되었다.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혼자서 울고,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나오는 장면.주변 사람들은 그걸 모르는 척했다. 괜찮은 척했고, 그냥 그런 날도 있는 것처럼 넘겼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 시스템에서는 아래에 있어도 힘들고, 위에 가도 힘들..

나는 왜 한국의 시스템을 떠났는가 - 1장. 한국에서 간호사로 산다는 것

한국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안정적인 직업에 속한다.전문직, 국가고시, 병원, 흰 가운.겉으로 보면 나는 이미 “성공한 여성”의 범주에 들어가 있었다. 휴학도 하지 않고 대학 졸업도 전에 첫 병원에 취업했다.주변 친구들보다 앞서간다는 생각에 우쭐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안에서의 일상은 전혀 달랐다.병동은 늘 긴장 상태였고, 환자와 보호자, 의사와 관리자 사이에서 간호사는 언제나 완충재 역할을 해야 했다.의사가 화를 내면 받아내고, 보호자가 불만을 쏟아내면 흡수했다. 문제는 그 노동이 단순한 업무가 아니라 ‘태도’로 요구된다는 점이었다. 차분해야 했고, 공손해야 했고, 불편한 말을 삼킬 줄 알아야 했다. 실수를 하면 지적받았고, 부당함을 말하면 “너무 예민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나는 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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