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 간호사로 일하던 시절, 나는 자주 울었다.
환자 때문이 아니라 관계와 분위기, 그리고 끝없는 긴장 때문이었다. 그럴 때마다 연차 높은 선생님들이나 수간호사를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나도 저 자리까지 가면 조금은 편해지겠지.’
그게 나를 버티게 하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간호부 회의가 끝난 뒤 돌아온 수간호사가 사무실에서 펑펑 우는 모습을 봤다. 우연히, 단 한번이 아니라 병원을 옮길 때마다 나는 비슷한 장면을 다시 보게 되었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혼자서 울고,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나오는 장면.
주변 사람들은 그걸 모르는 척했다. 괜찮은 척했고, 그냥 그런 날도 있는 것처럼 넘겼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 시스템에서는 아래에 있어도 힘들고, 위에 가도 힘들다.
버티고, 더 버텨서 수간호사가 되어도 문제는 끝나지 않는다.
나는 성공의 문제라고 믿고 버텼지만, 사실은 구조의 문제였다. 그 날 이후 나는 한국에서의 미래를 처음으로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그 시기에 나는 결혼을 선택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나는 한 사람을 선택한 게 아니라 결혼이라는 시스템 안으로 들어간 것이었다. 그때의 나는 막연하지만 강렬하게 한국을 떠나고 싶었다. 이 나라에서의 내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미국 간호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고, 언젠가는 다른 나라에서 다른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그는 나에게 자신을 Frank라고 소개했지만 그 이름조차 가짜였다. 자신을 영주권자라고 했고, 나중에는 시민권자라고도 했다. “우리 같이 미국 가자”는 말은 그저 로맨틱한 약속이 아니라 현실적인 가능성처럼 들렸다. 그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가 그와 함께 한국을 떠나기 위해서였다.
지금 와서야 말하지만 그 말들은 모두 거짓이었다.
그는 영주권자도, 시민권자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를 사랑했고, 그가 보여준 출구를 믿었다.
한국에서 결혼은 두 사람이 만드는 관계가 아니다. 이미 만들어진 틀에 여자 하나, 남자 하나를 끼워 넣는 일이다. 그 틀 안에서 참고, 맞추는 것이다.
나는 결혼하는 순간 아내가 되었고, 한 집안의 구성원이 되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는 나 스스로도 관심이 없었다.
중요한 건 얼마나 잘 버티고, 얼마나 잘 순응하는지였다. 나는 사랑을 얻은 게 아니라 역할을 부여받았다.
갈등이 생기면 내가 더 이해해야 했다. 결혼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이 관계는 처음부터 이용에 더 가까운 계약이었다.
한국을 떠나고 싶다는 마음, 미국에서 간호사로 살고 싶다는 계획, 그는 그것을 사랑이 아니라 약점으로 사용했다.
그는 위조된 영주권 서류를 보여주었고, 자기가 나를 위한 결혼 비자를 받아줄 수 있다고 했다.
“이제 미국 간호사 시험은 안 해도 돼.”
“내가 다 해줄게.”
그 말들은 나를 도와주기 위한 말이 아니라 나를 그에게 묶어두기 위한 말이었다. 나는 공부를 멈추었고, 준비를 미뤘고, 그의 말에 내 미래를 맡겼다.
그건 사랑이 아니라 통제였다. 가스라이팅은 나의 인생 계획을 포기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가장 깊이 작동했다.
그는 나에게 “네가 혼자서는 못 간다”는 이야기를 반복했고,
“내가 없으면 안 된다”는 서사를 심었다.
그리고 그 위에서 나는 점점 작아졌다.
그의 말대로라면 내 영주권 서류는 이미 진행 중이어야 했다.
나는 그 말을 믿고 기다렸다.
하루가 아니라
1년,
그리고 2년,
그리고 3년.
그 사이에 나는 미국 간호사 시험을 통과했다. 내가 스스로 나아갈 수 있는 자격을 내 손으로 다시 만들어냈다.
그 순간부터 나는 그를 조금씩 믿지 않게 되었다.
신뢰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의 말들 속에서 앞 뒤가 맞지 않는 부분들이 보였고, 설명이 바뀌었고, 서류는 항상 “곧”이었지만 결과는 없었다.
남편을, 가장 가까운 사람을 의심한다는 것은 자아가 무너지는 일이였다. 나는 그게 너무 두려워서 오랫동안 보지 않으려 했다. 내가 선택한 사람을 쉽게 미워할 수가 없었다. 그를 의심하면 이 결혼이 가짜가 된다는 걸 인정해야 하니까.
그 오랜 기다림에는 내 개인적인 성격만이 아니라 한국 여성에게 주입된 미덕도 섞여 있었다.
참는 여자, 기다리는 여자, 의심하지 않는 여자.
결혼 안에서는 이 미덕이 더 강하게 작동했다.
나는 그 미덕을 착용한 채 잘못된 결혼생활을 견디고 있었다.
내가 이혼을 쉽게 결정하지 못한 이유는 그를 사랑해서만이 아니었다. 한국에서 이혼은 두 사람이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실패자로 기록되는 일이기 때문이였다.
한 번 실패한 여자, 참지 못한 여자, 문제를 만든 여자.
그 모든 단어가 이혼한 여자 위에 덮인다.
그래서 나는 그가 나를 속이고 있다는 걸 점점 더 분명하게 느끼면서도 쉽게 이혼을 결정하지 못했다. ‘이혼한 여자’가 되는 것보다 ‘조금 더 참는 아내’로 남는 게 사회 안에서는 더 안전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안전은 나를 지켜주는 게 아니라 나를 묶어두는 족쇄 였다.
그렇게 나는 사랑도, 신뢰도 이미 사라진 결혼 안에 혼자 남아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나는 처음으로 이 결혼, 사회가 만들어낸 구조에서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Diary > My Little Essay'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한국이라는 틀의 바깥에서 - 5장 괌에서 무너지기 시작하다 (0) | 2026.01.13 |
|---|---|
| 한국이라는 틀의 바깥에서 - 4장 괌 이민 (0) | 2026.01.13 |
| 나는 왜 한국의 시스템을 떠났는가 - 3장 나의 미래를 통제한 사람 (0) | 2026.01.13 |
| 나는 왜 한국의 시스템을 떠났는가 - 1장. 한국에서 간호사로 산다는 것 (0) | 2026.01.13 |
| 프롤로그 - 이 글을 쓰는 이유 (0) | 2026.0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