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My Little Essay

한국이라는 틀의 바깥에서 - 5장 괌에서 무너지기 시작하다

songsali 2026. 1. 13. 0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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괌에서의 삶은 안정되어 있었다.

일이 있었고, 집이 있었고, 나는 혼자서도 하루를 탄탄하게 굴려가고 있었다.

 

하지만 관계가 없었다. 한국에서는 관계가 너무 많아 숨이 막혔지만, 여기서는 아무도 없었다. 퇴근 후에 문을 닫고 들어가면 그 공간에 있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었다. 누군가와 갈등할 일은 없었지만, 누군가에게 기대는 일도 없었다. 자유는 혼자가 되는 것이었고, 혼자는 곧 고립이 되었다. 나는 그 고립이 처음에는 평화처럼 느껴졌지만, 시간이 지나자 소음 없는 방처럼 나를 잠식했다. 하루 종일 영어로 일하고, 집에 와서는 말 한마디 하지 않는 날들이 이어졌다. 나는 조금씩 내 목소리를 잃어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혼자인 게 편하다고 생각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아도 되고, 누구의 기분도 관리하지 않아도 되니까. 하지만 사람은 아무리 자유로워도 완전히 혼자서는 버티지 못한다. 괌에서의 나는 하루 종일 사람들 속에서 일했지만, 정작 나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내가 어떤 나라에서 왔는지, 무슨 일을 겪었는지, 어떤 밤들을 지나왔는지 아무도 묻지 않았다. 그건 편했지만, 동시에 나는 이곳에서 아무에게도 기억되지 않는 사람이었다.

 

외로움은 갑자기 찾아오지 않는다. 조용히, 조금씩, 사람의 안쪽을 비운다. 나는 집에 돌아와 불을 켜고 그 불빛 아래에 혼자 앉아 하루를 끝내는 게 점점 더 힘들어졌다.

 

나는 무너지지 않기 위해 몸을 더 혹사했다. 운동을 하고, 자연으로 나가고, 더 열심히 일했다. 처음에는 그게 뿌듯했다. 나 혼자서도 이 삶을 잘 굴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중에야 알았다. 그건 성취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이었다.

 

나는 괌을 내가 선택한 파라다이스라고 굳게 믿고 싶었다. 그래서 다른 도전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이미 너무 큰 인생의 변화여서 이제는 정착하고 싶었다. 그렇다고 한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그러다 하나의 사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내 동료들 대부분은 결국 미국 본토로 돌아간다는 것.
괌에 남아 있는 사람들 중 가족도, 연고도 없이 혼자 버티고 있는 사람은 나뿐이라는 것.

 

그 깨달음은 조용히 나를 고립시켰다.

 


 

그 시기에 차 사고가 났다. 괌의 방식은 모든 것이 느렸다. 보험 처리도, 연락도, 결정도.

 

3개월, 4개월이 지나도록 아무 소식이 없었다. 아무 것도 진행된 것이 없었다. 내가 제출한 서류는 영원히 "검토중" 이였다. 그 사이에도 은행에서는 차 할부금이 빠져나갔고, 보험료가 빠져나갔고, 렌트카 비용이 쌓였다. 그 때 나는 깊은 우울감 속에 빠져 있었다. 아무 것도 움직이지 않는 그 몇 달 동안, 나는 매일 서류를 확인하고, 이메일을 보내고, 답변 없는 기다림을 반복했다.


괌을 원망하기 시작했다.

“한국이었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괌이여서 일어난 사고야."

 

그 생각들이 하루 종일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러면서 지난 2년간의 괌에서의 좋은 기억들이 조금씩 사라졌다. 바다도, 햇빛도, 내가 처음 느꼈던 자유도 모두 불안과 분노 속에서 흐려졌다. 괌은 더 이상 나를 살게 한 곳이 아니라 나를 가두는 섬처럼 느껴졌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내가 괌에서 버텨온 모든 것이 한 번의 사고로 무너질 수 있을 만큼 얇았다는 것을. 내 주변에 아무도 도움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나는 그 얇아진 삶을 붙잡고 더는 이곳에 머물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계획적으로가 아니라 도망치듯 괌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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