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사고 이후 내가 괌에서 쌓아 온 안정감이 흔들리기 시작하자, 직장에서의 일도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스트레스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긴 휴가를 받았다. 쉬기 위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해서였다. 나는 괌을 떠날 방법을 현실적으로 계산하기 시작했다.
먼저 영어 시험 점수가 필요했다. 괌으로 올 때도 영어 점수가 안나와서 한국에 1년이나 발이 묶였던 기억이 있었다. 그 악몽을 다시 반복해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지치게 했다. 하지만 미국 본토 간호사 면허로 바꾸려면 피할 수 없는 절차였다. 다른 방법은 없었다.
그보다 더 무서운 건 다시 취업하는 일이었다.
미국 본토에서,
간호사로,
혼자.
괌보다 훨씬 크고, 빠르고, 냉정한 곳에서 내가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그 질문이 매일 나를 흔들었다. 동시에 나는 여기에 그대로 남는 것이 가장 안전해 보이지만 사실은 가장 위험한 선택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두려움을 들고 다시 이동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괌을 떠나는 건 또 한 번의 실패처럼 느껴졌다. 여기서 버텨냈고, 여기까지 왔고, 여기서 다시 시작했다고 믿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착할 거라고 생각하며 샀던 가구들을 바라볼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졌다. 침대도, 책상도, 작은 가구 하나하나가 ‘여기서 살겠다는 나의 결심’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걸 처분하는 일은 물건을 버리는 게 아니라 내가 괌에 걸어둔 희망을 정리하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마음 한쪽에서는 나는 여기서 더 버티지 못한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한번 떠나기로 마음먹자 이상할 정도로 빨리 떠나고 싶어졌다. 이곳에 더 머무를수록 결심이 흐려질까 봐, 다시 나를 속일까 봐.
그래서 나는 정신없이 움직였다. 짐을 싸고, 항공권을 사고, 차를 정리하고, 아파트를 내놓고, 일을 그만두고...
처리해야 할 것들이 눈앞에서 쏟아져 나왔다. 나는 그 모든 걸 혼자 감당하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가장 중요한 걸 놓쳤다.
진저였다.
고양이를 데리고 비행기를 타려면 검역 서류가 필요했다. 괌의 농림 부서에서 며칠에 걸쳐 발급받아야 했고, 백신 기록도 다시 맞춰야 했다. 나는 그걸 비행기 타기 직전에야 알았다. 이미 비행기표는 끊었고, 아파트는 비워졌고, 차도 없었고, 일자리도 없었다. 돌아갈 곳이 없었다.
그 순간 나는 공항에서 무너졌다. 울면서 진저를 지인에게 맡겼다.
“한 달만 기다려 줘.”
“꼭 돌아올게.”
“반드시 데리러 올게.”
그 약속만이 내가 버틸 수 있는 유일한 끈이었다. 나는 진저를 두고 도망치듯, 그러나 다시 돌아오기 위해 미국 본토로 떠났다.
영어 시험 준비는 완전히 혼자였다.
한국처럼 자주 열리는 시험도 아니었고, 가장 가까운 시험장은 세 시간 반이나 떨어져 있었다. 비용도 비쌌다. 그래서 실패할 수 없었다. 미국 본토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쉬지 않고 공부했다. 나에게는 단 하나의 목표만 있었다.
영어 점수
그 시간은 간절한 만큼 악몽 같았다. 되돌아 갈 곳이 없었기에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마치 처음으로 돌아간 것처럼, 또 다시 내 인생이 시험 하나에 걸린 느낌이었다. 그래도 나는 이건 실패가 아니라 시작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험을 한 번에 통과했다. 그 점수는 지난 2년 동안 괌에서 버텨온 나의 시간이 숫자로 증명된 것처럼 느껴졌다. 나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그 이후부터는 일들이 순조롭게 풀렸다. 면허를 본토 면허로 바꾸는 동안 나는 일자리를 알아봤고, 여러 개의 제안을 받았다. 결국 괌보다 더 좋은 조건으로 트래블 널스 계약을 시작하게 되었다.
설렜다. 너무 행복했고, 뿌듯했다. 괌의 바다와 하늘이 가끔 그리웠지만, 나는 분명히 성장해 있었다.
이제 진저를 데리러 갈 시간이었다.
나는 더 이상 도망치는 사람이 아니라 이동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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