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나라, 괌에서의 나는 외로웠지만 분명히 희망을 느끼고 있었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가끔은 정말 죽을 것처럼 힘들었다. 서류도, 집도, 일도, 모든 걸 혼자 처리해야 했다.
그런데도 나는 이상하게 행복했다. 자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괌은 아름다웠다.
그냥 예쁜 정도가 아니라 숨이 멎을 만큼, 가슴이 찢어질 만큼 아름다웠다. 햇빛이 바다에 부딪힐 때마다 세상이 새로 태어나는 것 같았고, 그 풍경 앞에 서 있으면 내가 여기까지 스스로 왔다는 사실이 벅차오르듯 밀려왔다.
그 아름다움은 위로가 아니라 각성이었다.
‘아직 살아도 되겠다’는 감각.
‘여기서 다시 시작할 수 있겠다’는 확신.
괌의 하늘과 바다는 내가 잃어버렸던 미래의 크기를 다시 보여주고 있었다. 바다는 늘 가까웠고, 하늘은 넓었고, 나는 스쿠버 다이빙을 하며 내 몸이 아직 살아 있다는 걸 느꼈다.
무엇보다 괌은 내 커리어가 시작되는 곳이었다. 미국 간호사로서의 삶이 그곳에서 처음 열렸다.
영어는 아직 익숙하지 않았고, 매일 병원에 가는 건 여전히 두려웠다. 하지만 그 두려움은 한국에서 신규 간호사로 느꼈던 질식 같은 공포와는 달랐다. 그 때의 나는 무너지는 사람이 아니라 자라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괌에서의 하루는 힘들었지만 앞으로 가고 있다는 감각이 있었다. 나는 더 이상 누군가에게 붙잡히거나 남들과 비슷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였다. 스스로를 데리고 다음 단계로 가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는 내 힘으로 차를 사고, 집을 구하고, 미국 간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그 누구의 허락도 필요하지 않았다. 일에도 빠르게 적응해 갔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분명히 제 역할을 해내고 있었다.
미국의 동료들은 나를 평가하지 않았다. 내 결혼 상태도, 나이도, 어디서 왔는지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내가 어떤 간호사인지, 어떻게 일하는지만 보았다. 아무도 나를 사회적 잣대로 짓누르지 않았다.
나는 처음으로 숨통이 트이는 느낌을 받았다. 한국에서는 항상 무엇인가 부족한 사람처럼 살아왔지만, 여기서는 그저 한 명의 전문직 노동자였다.
그 차이가 나를 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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