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콥을 만났을 때 나는 이미 누군가에게 나를 맡기는 법을 잃어버린 사람이었다. 사실은 맡기고 싶지 않았다. 이미 한 번 사람에게 내 미래를 맡겼다가 삶이 어떻게 망가지는지 배웠기 때문이다.
나는 통제를 잃는 것에 대해 트라우마적인 공포를 가지게 되었다. 누군가가 나의 미래를 쥐고 있었던 기억이 내 몸에 남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사랑 앞에서도 먼저 나를 내려놓지 않았다. 그건 차가움이 아니라 생존이었다.
그대신 나는 내 삶을 들고 제이콥 옆에 섰다. 그리고 그는 그 자리를 침범하지 않았다.
제이콥은 무의식중에라도 나를 통제하지 않으려 조심한다.
그는 내가 어떤 트라우마를 겪었는지 모르면서도 그렇게 행동한다. 내가 요구해서가 아니라 그는 원래 그런사람 이다. 그는 내 선택에 먼저 손대지 않고, 내 결정에 먼저 개입하지 않는다.
나는 그 안에서 처음으로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서도 나 자신으로 남아 있을 수 있었다. 그는 나의 비자도, 커리어도, 이동도 결정하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허락을 구하지 않았고, 그는 나를 붙잡으려 하지 않았다.
우리는 각자의 삶이지만 같은 방향으로 걷는 방식으로 관계를 만들었다. 우리는 함께 가되, 각자 설 수 있는 상태였다.
나는 이 관계를 지키기 위해 유난히 예민해졌다.
누군가가 우리 사이에 들어와 방향을 정하려 할 때,
나는 그것을 단순한 의견이 아니라 구조의 침범으로 느꼈다.
한국은 바로 그런 침범을 ‘정상’으로 만드는 사회였다.
한국에서는 결혼식에 큰 의미를 둔다. 얼마나 성대하게, 얼마나 ‘정상적으로’ 결혼했는지가 관계의 성공으로 여겨진다. 결혼식은 두사람의 관계를 인정 받기위해 사회에 제출하는 서류에 가깝다.
결혼식이 끝나면 그 안에서 살아가는 두 사람은 그제야 진짜 관계를 시작한다. 그 관계는 이미 많은 규칙과 역할로 둘러싸여 있다. 아내로서, 남편으로서, 며느리로서, 사위로서 ‘맞춰야 할 도리’가 생긴다.
이 ‘도리’라는 것을 따르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잘 따를수록 사람들은 말한다.
“저 집은 결혼 잘했다.”
“부부가 참 잘 산다.”
“부모님께 효도한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결혼식이 인생에서 꼭 있어야할 하나의 표준 코스처럼 정해져 있다. 그래서 그 경로에서 벗어나면 설명이 필요해진다. 나처럼 말이다.
나의 결혼을 그 표준 코스 안에 얹고 싶지 않았다.
결혼식을 하지 않는 선택은 낭만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였다.
누군가에게 증명하기 위해 시작되는 관계가 아니라 이미 살아가고 있는 관계로 남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시작한 결혼 역시 사랑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영역들이 있었다. 현실에서 가장 사소하고 가장 자주 부딪히는 문제들로부터 끊임없이 시험을 받았다.
제이콥과 집안일로 갈등이 있었다. 어떤 나라에서든 흔한 일이다. 중요한 건 갈등이 아니라 그 갈등이 어떻게 다뤄졌는지였다. 나는 제이콥에게 내 마음을 이렇게 말했다.
What’s been hardest for me isn’t just the physical cleaning, it’s the mental management.
I know that you’ll clean when I ask, but having to be the one who always has to say something is what really exhausts me.
Especially when I leave for work and I know you’re gaming while the house stays the same,
it makes me feel like I’m carrying the responsibility .
나한테 제일 힘든 건 단순히 청소하는 일이 아니라, 계속 집안을 ‘관리’해야 하는 역할이야.
네가 내가 말하면 해줄 거라는 건 알아. 근데 항상 내가 먼저 말해야 한다는 게 나를 제일 지치게 해.
특히 내가 일하러 나가 있고, 너는 게임을 하고 있는데 집이 그대로일 때, 마치 이 집에 대한 책임을 나 혼자 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
내가 참아 왔던 것은 집안일 자체도, 그 양도 아니었다.
“괜찮아.”
“내가 하면 되지.”
그 말을 나 자신에게 계속 되뇌어야만 했던 상황이었다. 문제는 제이콥이 벗어 던져놓은 바지가 아니라, 그 바지를 보며 또 한 번 나를 설득해야 했던 순간들이었다. 그 반복이 나를 지치게 했다.
집안일은 공동 책임이 아니라 여자의 관리 업무로 여겨진다. 그래서 남자는 “돕는” 위치에 있고, 여자는 “책임지는” 위치에 놓인다. 그래서 항상 이런 말이 따라온다.
“그래도 남편이 점심 도시락까지 싸주잖아.”
“그 정도면 잘하는 거지.”
“남자니까 시키면 잘 하는데 왜 말 안 하고 혼자 뚱해 있어?”
“너가 좀 알려줘.”
“말해주면 내가 할게.”
“말 안 하면 어떻게 알아?”
이 말들은 중립적인 것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책임을 여자에게 다시 돌리는 방식이다. 누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언제 해야 하는지, 왜 해야 하는지까지 여자가 계속 관리해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 구조는 여자가 남자에게 계속 부탁해야 하는 구조다. 도와달라고, 치워달라고, 신경 써달라고, 한 번 더 말해야만 움직이는 구조. 그 안에서 여자는 파트너가 아니라 관리자가 된다.
이 관계속에서는 서로를 돌보는 게 아니라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운영하는 일이 된다. 그래서 여자는 말하지 않으면 혼자 짊어지고, 말하면 잔소리가 된다.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남녀 역할이 그렇게 배치된 구조다. 그래서 여자는 지치고, 폭발하고, 그러면 또 “왜 그렇게 예민하냐”는 말을 듣는다.
이 반복은 사람을 힘들게 하는게 아니라 사람을 작게 만든다. 포기하게 만든다. 그 순간, 한 사람이 느끼는 피로와 부담은 거래로 바뀐다. 그는 이것을 했으니, 나는 저 정도는 감당해야 한다는 논리가 마음속에 자리 잡는다.
문제는 집안일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책임의 불평등이다. 그리고 그 불평등이 너무 일상화되어 있어서 사람들은 그걸 문제라고조차 부르지 않는다. 내가 제이콥에게 말한 것은 거래가 아니었다.
“나는 청소가 힘든 게 아니라, 계속 관리자가 되는 게 힘들다.”
이 말은 집안일의 양이 아니라 책임의 구조를 말하는 것이다.
제이콥은 그 말을 “나는 네 도시락을 싸니까 너는 참아야 해”로 바꾸지 않았다. 그는 “아, 이 집의 책임이 네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구나”로 들었다. 내 말을 공격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내가 무엇을 요구하는지가 아니라 내가 얼마나 지쳐 있었는지를 들었다. 내 말을 왜곡하지 않았다. “날 비난하는 거야?”로 바꾸지 않았고, “그 정도로 화낼 일이야?”로 축소하지도 않았다. 대신 그는 우리의 관계를 지키기 위해서 더 노력했다.
그 차이는 어마어마했다. 한국에서는 나의 요구가 ‘고마워할 줄 모르는 불만’이였지만, 여기서는 관계를 조정하기 위한 정보가 되었다.
나는 그 안에서 처음으로 말해도 되는 사람이 되었다. 그것이 지금 내가 느끼는 안정감의 핵심이다.
누군가가 내 말을 왜곡없이 듣는다는 것.
한국에서 나의 요구는 문제로 취급되었고, 무시는 일상이었다. 하지만 여기서는 말하는 순간 관계가 조정된다.
나는 그 차이 안에서 비로소 안전해졌다. 그 작은 일상들이 나에게는 처음 겪는 존중이었다. 나는 그 안에서 통제받지 않으면서도 혼자가 아니었다.
나는 안정된 삶을 살고 있다.
집이 있고,
직장이 있고,
파트너가 있고,
그리고 아기가 있다.
내 안에는 이제 도망칠 필요가 없는 고요함이 있다. 한국을 떠난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나는 한국을 미워해서 떠난 게 아니라, 그 구조 안에서 나로 살 수 없었기 때문에 떠났다. 이제 나는 한국을 멀리서 바라볼 수 있다. 그곳은 나를 만든 곳이지만, 내가 살아야 할 곳은 아니었다. 나는 나와 내 아이에게 다른 구조를 남기고 싶다. 그게 내가 이 모든 선택을 한 진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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